개혁주의변증학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변호하고 증거할 것인가를 연구합니다.

더보기

바이블 퍼스펙티브

성경의 기초부터 고급 단계를 연구하는 과정입니다.

더보기

성경난제해설

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한 질문과 답변을 주는 곳입니다.

더보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저희 연구소는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소개합니다

Latest Posts

기독교변증학 연구 목회자 과정 모집

기독교 변증학 연구 과정

(Certificate of Christian Studies)

 

입학 자격 : 기독교의 진리를 개혁주의 변증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목회자

수업 내용 : 성경의 구속사적 관점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 문제점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을 프린트물(PDF 파일)을 따라 체계적으로 공부하게 됨.

특 징 : 런던에서 진행되는 성경 66권의 구속사세미나, 성경고고학 세미나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학 비 : 수업료 총 15만원(일시불 10만원)

문 의 : 전화 +44 750044 1125

카톡 ID – icslondon

이메일 – icslondon.edu@gmail.com

 

‘전도 거부 카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한국일보  2017년 5월 21일자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와 카이스트, 연세대 등 전국 14개 대학생 200여명의 모임인 ‘프리싱커스(Freethinkers)’는 전도거부카드를 만들어 이달 중 각 대학에 배포를 하겠다고 밝혔답니다. 이 카드는 “저에겐 당신의 전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힌 일종의 명함으로 4년 전 서울대와 카이스트 등 일부 대학에 등장한 적이 있었고, 특히 전도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환영받고 있었습니다. 배포와 관련하여 오용재 프리싱커스 서울대지부장은 “최근 대학 내 포교행위가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일방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이 비상식적인 의사소통임을 알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카드를 사용하기 원하는 학생들은 ‘혼밥’을 하고 있거나 도서관에서 공부 중인 경우까지 포교대상으로 삼아 접근하는 데 거부감을 드러내는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재학생 A씨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옆에 앉아 말을 거는 종교인이 있어 경비실에 알린 적이 있다”며 “최소한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으며, 각 대학 커뮤니티에는 모르는 사람이 기숙사에 들어와 문을 두드렸다거나 집까지 쫓아오며 포교행위를 해 위협감을 느꼈다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중앙대 한 학생은 올 초 특정 단체의 포교행위로 인한 피해사례를 수집하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위협에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반대편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굳이 카드까지 내미는 과민 반응으로 분란만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특히 학내 종교 동아리 등에서는 “무리하게 자신의 믿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종교활동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움직임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김종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전도를 의무로 느끼는 종교인도 있겠지만 종교적 활동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제는 소통이라는 단어가 종교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런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지난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단어는 사회를 통합하는 하나의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했습니다. 이 단어가 아우르는 개념은 정치적 측면에서의 국가 통합이라는 화두에만 머루르지 않고 국가간 무역 분쟁이나  군사적 대치 상황,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범죄의 동기나  가족 문제, 심리와 치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의 핵심 키워드가 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개인과 다자간을 묶고 이해하는 중심에 소통의 문제가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소통이라는 단어는 종교 영역에선 그리 중요한 단어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종교란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따뜻함이나 교통이 아닙니다. 신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인간은 개인과 가정의 건강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 만족할 만한 공여를 신에게 바치므로 축복을 얻어내는 일종의 거래를 했을 뿐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해 일방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통을 전제로 성숙한 발전을 만들어 갑니다. 창조주 스스로 타락한 피조물을 찾아 오셔서 죄로 인한 막힌 담을 헗어 내시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해 오십니다. 얼마나 적극적이신지 죄 없으신 아들을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달리게 하심으로 둘 사이엔 소통의 정점을 만들어 냅니다. 이보다 더 적극적인 소통 방식을 타 종교에서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번 일은 우리의 전도 방식에 있어서 예전처럼 일방적인 외침의 시대에서 대화가 필요한 시대로 접어 들었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현상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전도 거부 카드를 보면 “저에겐 당신의 전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거부에 대한 미안함을 스마일 로고를 넣어 표현하는 센스를 보여주기까지 합니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이것이 단순히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불신자들의 아이디어일 뿐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 나름에 전도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들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전도라는 사명감 때문에 최소한의 예의 범절도 모르는 무례한(소통할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선 사람을 통해 사람을 전도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사람들과 만나셨을 때 죄 가운데 있는 인생들을 보시며 우신 적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해져 있는지, 자기들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음을 상기시키고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이해시키려 아셨지만 들을려고 하는 자가 없음을 통탄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하셨고 사람들은  소통을 거부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불신자들을 전도하력 한다면 저들이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거부 이유가 무엇인지, 이에 대한 반박과 해명을 위한 접근이 필요하다고믿습니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것을 내용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알고 있는 그것을 나도 알고 있어야 하고 더 알아야 대화의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의 논리적이고 상대의 정곡을 찔러 핵심을 전달하는 복음 전도와 변증 방식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변화를 빨리 받아 들이며,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입니다.  지금껏 그래왔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큰 규모의(?) 복음에 대한 거친 태클을 걸어오는 시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를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철학으로 논증해 내야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기독교인이 줄어든다는 것은 전도가 안 된다는 측면도 있지만 이미 기독교인이었다가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독교의 진리를 변호하거나 제대로 설명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상대가 불신자이거나 신자들이거나 상관없이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비록 신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믿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냥 ‘아멘!’하고 넘어갔다가 어느 순간에 진리에 의심이나 회의가 들었을 때 혹은 이단의 기만에 노출되었을 때 쉽게  넘어가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복음 전도에 효과적으로 쓰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을 위해 대답할 것을 항상 연구하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 설교 너무 좋아!’라는 말도 당장은 전도하는 주요한 방법인 것 같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전도는 해 놓고 양육하는 것을 교회에 일임하는 것도 얼마 안가 사라질 전도 방법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 내가 연구하고 얻은 풍성한 진리를 가지고 성령을 의해 증거할 수 있다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과 더불어 일어나는 일입니다.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감화감동이 아닙니다.  진리의 내용이 없는 구원은 위험합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만 내가 무식해도 된다는 생각을 거기에 이입시키지 말기를 바랍니다. 기독교의 소통은 거래가 갖는 소통의 수준을 뛰어 넘을 뿐 아니라 이전에 이해 못하던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견고해지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만 만족한 신앙은 곧 한계를 드러낼 것이고 전도를 해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될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 충실할 것을 권면드립니다.

첫째, 언어를 선택함에 있어도 신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쉐퍼의 말처럼 우리 끼리만 아는 기독교적 용어를 버리고 불신자들의 언어와 사상으로 전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알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우리 마음에 역사하신 성령님께서”, “새벽제단을 쌓아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조명하시고” 등등. 우리 끼리만 알아 들을 수 있는 용어로 상대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지고 불신자들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와 저들의 사살을 좌우하는 사고와 사상을 가지고 진리를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소통의 기본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언어가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할 때는 신자들 끼리 사용하는 종교적 언어를 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기족 지성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세상에서도 상식없는 일들이 무시되고 있음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습니까? 기독교가 초월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선 초월은 낮설고 비상식적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알기 전에는 초월을 담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난 이후에야 비로소 신비와 초월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할 때는 상대에게 신비함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차라리 내 삶이 주의 말씀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를 간증하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셋째, 상대를 인정하십시오. 우리의 전도 대상은 획일적인 감정이나 이성 혹은 상황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얻기 위해 기도하며 살피십시오. 우리의 전도 대상자가 어떤 감정과 환경에 처해져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처해져 있는지….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면 귀하게 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상대가 ‘배고프다’는데  ‘배고프면가서 빵 먹으라’고 답한다면  그가 빵을 살 돈이 없는지 밀가루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 상황인지를 전혀 모르는 독단이 될 것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면 일방적인 정보 전달 보다는 그들의 삶과 감정에 이입하는 것이 훨씬 더 그들의 마음 문을 여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체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상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시 중요한 접촉점이 됩니다.

넷째, 모범적이 되십시오. 사랑 없는 전도는 구호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전도는 사랑을 동반했습니다. 모든 이에게 지탄받는 창녀라도 사랑으로 대하셨습니다. 단호하더라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견제하거나 무시한다면 스스로 전도를 표기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해야 하느냐면 무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도는 삶으로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전도 준비를 하십시오. 교회와 연구 기관의 도움을 받고 틈틈히 독서와 토론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면 상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실력를 갖추게 될 것입니다. 전도자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으로 전도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전도를 성령께 맡긴다는 말을 전도자는 이성적이지 않거나 비합리적인 자세를 가져도 성령께서 다 알아서 구원하신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은 성령님의 구원하심에 대한 대단히 지엽적인 지식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리에 대한 지적 작업을 성령께서 쓰시도록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성령의 단독적 역사를 인정하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의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다양한 용어로 정의 되듯이 복잡한 철학과 사상, 종교와 문화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만큼 전도의 대상자들도 예전과는 다르고, 일률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변치 않는 진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적절한 용어와 철학, 사상에 맞게 전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저희 런던기독교학문연구소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연구소는 성도들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신앙할 수 있도록, 특별히 진리에 관한 변증적 능력을 키워갈 수 있도록 성도들을 훈련하는 기관입니다.

성경적 진리와 그 가치를 불신자는 물론 신자들에게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불신자들에게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복음을 납득시키기 위함이요(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이 우선이지만), 신자들에게는 진리에 관한 바른 이해를 돕고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기관으로 내신 지상의 유일한 구원 공동체 교회를 바르게 이루어 가는 일에 저희 연구소를 사용하시기를 항상 기도하며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There are a lot of widgets bundled with Page Builder. You can use them to bring your pages to life.